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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1

다잘난시대 2016. 11. 28. 12:21

이슬람교의 기원과 실상을 밝힌다 1 세상읽기

2004.12.2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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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의 기원과 실상을 밝힌다 

 

노우호 목사님

 

주후 64년부터 311년까지 박해시대에 오히려 순수했던 기독교가 311년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바로 2년 후 313년 콘스탄니누스 황제에 의하여 교회의 자유가 선포되자 지하에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오래지 않아 교회는 교리적인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 주후  325년 비두니아 주(州) 니케아에서 동서 교회가 함께 모여 개최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 : 325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하였다. 회의의 동기는 아리우스 논쟁 즉,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派)를 이단(異端)으로 단죄하여 분열된 교회를 통일시키고, 로마제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참석자는 318명이라고 하나 분명치 않다. 공의회에서는 2편의 신경(信經)이 제출되었는데, 아리우스파인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제출한 것은 폐기되고, 팔레스티나 공동체의 "세례신경"을 기초로 "동질(同質)"이라는 용어를 보완한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신경이 채택되어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니케아신경"이 공포되었다. 그 결과 4명의 아리우스파가 파문(破門), 유형당했다. 이 밖에도 부활제의 시기, 이단자에 대한 세례, 속죄 및 사제제도 등을 제정, 결의하였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고대 그리스도교회의 공의회 가운데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공의회. 381년 제2회 세계 공의회 : 테오도시우스 1세가 소집, 안티오키아의 주교 멜리티우스가 주재했다. 150명의 동방정교회 정통파와 36명의 이단 주교들이 참가했다. 삼위일체의 교의(敎義)에 관하여 논의되었으며, 특히 성령의 신성함을 옹호하였다. 325년에 있었던 니케아공의회의 합의를 공인하였다. 


397년 카르타고 회의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 오늘날에는 성경 가운데서 최초부터 교회가 "성령(聖靈)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으로 인정한 것을 "제1정경(Libri Prodocanonci)"이라고 하고, 일부 교회(특히 프로테스탄트)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제2정경(Libri Deuterocanonci)"이라고 한다.

구약성서의 토비트》 《유딧등 7서와 에스델서의 일부분 등 몇몇 부분이 그러한데,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이것들은 "외경(外經)"으로 여기는 데 반하여, 가톨릭에서는 "제2정경(7권)"이라 하여 이것들도 정경으로 삼고 있다. 구약성서의 정경이 지금의 39권(원전에서는 24권)으로 정해진 것은 BC 90년경의 야무니야 회의에서였고, 신약성서의 정경이 현재의 것처럼 27권으로 결정된 것은 397년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였다. 즉 신,구약성서를 말하며 정전(正典)이라고도 한다. 본래 그리스어(語)의 kanon에서 유래한 말로서, 라틴어 "카논"은 "표준", "척도", "모델" 을 뜻한다. 사도 바울로는 이 말을 "인간행위의 기준"이라는 뜻으로 썼으며(갈라 6:16), 초대 교회의 교부(敎父)들은 "그리스도 교도의 신앙과 행동의 모범"이라는 뜻으로 썼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 : 431년 소아시아 서해안의 에페소스(에페소)에서 개최된 종교회의. 그리스도의 품격(品格)을 둘러싼 논란이 신학문제의 초점이 되어 테오도시우스 2세가 소집한 3차 공의회이다.

안티오키아학파 출신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總大主敎)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하는 학파의 입장에서 마리아에 대한 "신(神)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정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학파가 이에 이견을 제시하자, 네스토리우스가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강요하여 이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안티오키아의 요한을 추종하는 시리아의 주교들과 교황 셀레스티누스 1세측의 대표자들의 참석을 기다리지 않고, 에페소스의 주교 멤논의 지지를 받는, 네스토리우스의 적수인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가 그들의 도착 전에 개회를 하였다. 그래서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직에서 해임되고, 파문(破門)을 당하였으며 그의 교구는 단죄되었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니케아 신경(信經)"이 재확인되었다.

결국은 이 에베소에서 마리아를 그리스도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머니로 결정하면서 결국은 그리스도교에서 변질되어 로마교 혹은 마리아교로 변질될 기초를 만들었다. 마리아를 신격화 하여 하나님의 어머니로 재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1500년이 지나 1931년에 확정 발표했다. (이 에베소 회의는 도적회의 혹은 날치기 회의로 불려지게 되었고 교리적으로 변질을 가져와 오늘날 로만 카톨릭이란 초대형 이단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카톨릭을 기독교로 부를 수가 없다.)

이렇게 타락하고 변질된 카톨릭 교회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군전쟁 때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려 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3세기 말부터 이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하여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전한다.

한편 박해 중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는 지하에서도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인들을 참소하여 괴롭혔던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이었다. 사탄은 매우 교활하게 유대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참소하고 로마를 통하여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하는 한편 기독교를 변질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을 만들어 교회를 심히 혼란스럽게 했었다. 그러한 방법이 통하지 않게 되자 그 다음 방법으로 교회를 지상을 나오게 하여 교리 논쟁으로 싸우게 만들고 그리고는 변질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교회사를 공부하신 분들이면 누구나 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탄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이 사실은 지금까지 교회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변질된 기독교는 마침내 로마교 즉 예수님보다는 마리아를 더 숭배하는 종교로 변질되어갔고 이들이 로마에 있으면 그야말로 로마교가 되고 말 것이 분명해지자 어떻게 해서든지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교황청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세계 모든 종교의 통합을 이루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목표는 로마 교황으로 하여금 모든 이방종교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승원장 즉 법황(法皇)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북아프리카 지방에 수도원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이란 장자 성직자가 될 사람들이 수도하는 곳으로 순진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로마교가 전 세계 지배를 위하여 만들어 낸 로마교회의 정보 수집을 위한 지부였다.

한편 4세기 중반에 북아프리카에 성자가 있다는 소문이 전파되어 나갔는데 그 사람이 바로 어거스틴이었다.  그는 로마 교회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성자로 불려졌다. 그는 저 유명한 참회록(Confession)이란 책과 신의 도성(The City of God)이란 책을 쓴 사람이다.

어거스틴의 탁월한 학문과 노력에도 아랍의 부족들은 좀처럼 잘 개종하지 않았다. 어거스틴이 죽고 나자 로마는 다른 방법을 준비하고 이를 추진해 나갔다. 당시에 로마교에서는 큰 도시에서 동떨어진 작은 부족들의 마을에 스파이들을 침투시켜서 이상한 예언들을 하고 다니게 했다. 그 예언이라 다름이 아니라 장차 한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 아랍의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시켜서 서로 싸우지 않는 나라를 건설할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다니게 했다. 이러한 예언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갔다. 그러한 예언이 퍼져 나간 후로는 부족들 간에 전쟁이 있을 때 마다 언제 그러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인지 고대하게 되었다.

 

출처 : 에스라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