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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과 신라 기독교
대보름과 신라 기독교 한국고대사상사연구소 유 우 식 (*역사학회 회원)
Ⅰ. 머리말
‘보름날’이란 음력 초하루로부터 열다섯째 되는 날을 말한다. ‘대보름날’이란 음력 정월 보름의 ‘上元’(상원)을 특별히 일컫는 말로 보통 ‘대보름’이라 하며, 정월 열나흘을 ‘소보름’이라 하며, ‘보름날’을 한자로는 望(망), 望日(망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글에서 ‘보름’의 어원과 ‘대보름’의 유래 및 ‘대보름’에 얽힌 내용을 밝히고자 한다.
Ⅱ. ‘보름’의 어원과 ‘대보름’의 유래
1. ‘보름’의 어원
‘보름’의 어원을 필자는 <寶婁望>(보루망)의 합성어로 보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寶’(보배 보)자는 ‘보배’의 뜻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당시 신앙의 대상의 하나인 ‘寶曆’(보력) 즉 ‘聖’(성)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발해 문왕의 시호 “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에서 ‘寶曆’(보력)은 ‘聖’(성; 耳邑壬→耳邑壬今;이읍임금 - 귀읍임금 - 귀퉁이고을 임금)을 뜻하기 때문이며, 또 중국 음으로 ‘보릐’이므로 이는 곡식의 이름 ‘보리’(麥 ;barley )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보리’(麥 ; 夕來)의 형태가 한 쪽 등이 갈라졌으므로 보배 피(寶血)를 흘린 예수(聖子) 즉 귀읍임금(耳邑壬今;귀퉁이고을 임금)의 손등을 상징하는 곡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둘째, ‘婁’(끌, 어리석을 루)자는 <여인(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婁’(루)자가 <女中主>(여중주)로 파자되므로 여인(‘女’; 성모마리아)의 품(‘中’)에 안긴 아기 예수(‘主’)의 뜻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婁’(루; 元婁) 다음으로 이루어지는 <次婁>(차루)는 천자 예수 즉 ‘耶蘇花王’(야소화왕)을 뜻하며, ‘耶蘇’(야소)는 중국음 ‘예쑤’이므로 <耳邑蘇生之主>(이읍소생지주; 귀퉁이고을에서 소생한 주 예수) 즉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무덤에서 소생(蘇生; 부활)한 주 예수>로 해석된다. 셋째, ‘望’(바랄 망)자는 ‘보름달’, ‘보름밤’의 뜻이다. 왜냐하면 望(망)자가 <亡月壬>(망월임)으로 파자되므로 그 뜻이 <亡月壬今>(망월임금; 죽어서 달이 된 임금) 즉 <부활 승천한 예수>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보름’을 <보루망>(寶婁望)이 <보룸 - 보름>으로 변한 것으로 보며, 또 ‘보름’은 달의 형태를 <예수의 부활>에 적용시킨 말로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달의 형태변화를 예수의 생애와 연관시켜보면 ①‘초승달’은 <아기예수의 탄생>을, ②‘보름달’은 <예수의 장성>을, ③‘그믐달’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④다시 반복되는 ‘보름달’은 <예수의 부활 승천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보름'의 어원 <望寶>(망보)와 관련된 말로 '바보'가 있다고 본다. <望寶>(망보)를 <바보>로 읽으면 그 뜻은 <보배를 바라보다>가 되지만 '국어사전'에는 '바보'를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얏잡아 이르는 말"이라 하였으므로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바보>라는 말의 원래의 뜻 <보배를 바라보는 사람>을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국 고대사회에서 사상의 변천과정에 '기독교' 다음으로 '불교'가 전래되자 신라의 왕실에서 불교를 먼저 수용하였고, 그 다음에 왕실의 불교 수용을 반대하던 귀족들이 불교를 수용하면서 전통적으로 믿어오던 '기독교'를 믿는 믿음을 고수하는 귀족들을 '바보'(望寶)라 호칭한데서 생긴말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입증되는 역사적 자료가 『三國遺事』 券 第三 "元宗興法 厭髑滅身"(원종흥법 염촉멸신)인데 그 뜻은 "원종(原宗 = 법흥왕)은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厭髑 = 이차돈)은 순교하다"가 있다.
2. ‘대보름’의 유래
‘대보름’의 유래는『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 ; 거문고 갑을 쏘다) 조에 “신라시대 비처왕(毘處王; 일명 소지왕) 즉위 10년(488년)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할 때에 까마귀(烏; 오)와 쥐(鼠; 서)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처럼「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살피시오.」라고 말하였다. 왕의 명을 받은 기사가 ‘피촌’에 이르러 두 돼지가 싸우는 것을 보고 있다가 까마귀 간 곳을 잊어버리고 길가에서 헤매고 있을 때, 한 노인이 못 속에서 나와 기사에게 글을 올리는데 겉봉을 보니「떼어 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사가 돌아와서 글을 왕에게 드리니 왕은「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떼어 보지 않고 한 사람만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자,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두 사람이란 서민이요, 한 사람이란 왕입니다.」고 아뢰었다. 왕이 그렇게 여겨 떼어 보니「금갑을 쏘라」(射琴匣; 사금갑)는 글이 있었다. 왕은 곧 궁궐에 들어가서 거문고 갑을 보고 쏘니, 거기에는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던 중이 궁주(왕비)와 몰래 간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형을 당했다. 이로부터 나라 풍속에 해마다 정월 상해(上亥), 상자(上子), 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하여 동작하지도 않았고, 15일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으로 제사지냈는데, 지금까지도 이를 행하고 있다. 이언에 이것을 ‘달도’라고 하니 슬퍼하고 근심해서 모든 일을 꺼리어 금한다는 말이다. 그 못을 서출지(書出池)라 한다.” 는 기록이 바로 신라 毘處王(비처왕; 소지왕) 때 시작된 대보름의 유래이다.
Ⅲ. 대보름에 얽힌 비밀
1. 왕명 ‘毘處’(비처)와 ‘炤知’(소지) 및 ‘炤智’(소지)의 해석
먼저 왕의 이름 ‘毘處王’(비처왕 ; 일명 ‘炤知王’, ‘炤智王’)의 뜻은 ‘비처왕’의 毘處(비처; 도울 비, 곳 처)로 <처를 비호하다>이므로 이를 통하여 필자는 ‘毘處王’(비처왕)의 뜻을 <처용을 비호한 왕>으로 본다. 왜냐하면 ‘處’(곳 처)를 ‘處容’(처용)의 약어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자어 ‘處容’(처용)을 필자는 4자어 西處之容(서처지용), 處處寬容(처처관용), 分處傅容(분처부용)으로 보며,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첫째, 西處之容(서처지용)의 西處(서처)는 東處(동처)에서 볼 때 반대편인 서쪽에 있는 耳邑(이읍 - 귀읍; 귀퉁이고을)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處容’(처용)은 西處耳邑壬今(서처이읍임금) 즉 <서방의 귀퉁이고을 임금>인 耶蘇(야소; 耳邑蘇生之主의 약어로 중국음 ‘예쑤’ - 예수)를 뜻한다. 둘째, 處處寬容(처처관용)은 모든 일에 관용을 베푼 예수의 행적을 표현한 말이다. 셋째, 分處傅容(분처부용)의 ‘分處’(분처)는 <處容의 分身>(분신; 처용의 제자)의 뜻으로 1987년 필자와 필자의 가족(처와 두 아들)이 영주시 평은 왕류동에서 발견한 ‘분처(分處)바위’에서 명문 “刀馬”(도마) 및 “םת”(히브리어문자 ‘타-우’, ‘멤- '도마’의 약자)으로 판독된 ‘사도 도마’의 뜻이며, ‘傅容’(부용; 스승 부, 얼굴 용)은 <分處(사도 도마)의 스승인 예수의 얼굴>의 뜻이 된다. 그러므로 ‘毘處王’은 <예수를 비호한 임금> 즉 <신라의 예수 신앙을 보호한 임금>의 뜻으로 해석된다. 그 다음 毘處王의 다른 왕명 炤知王(소지왕)․炤智王(소지왕)은 『삼국사기』‘신라본기’의 ‘소지왕본기’ 및 『삼국유사』‘왕력’은 ‘炤知’(소지; 알 지)로, 『삼국유사』‘사금갑’ 조에는 ‘炤智’(소지; 지혜 지)로 기록되었으므로 다음에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먼저 ‘炤知’(소지)는 ‘炤’(소)가 <밝다>이며, ‘知’(알 지)를 <知月(지월)> 즉 <知西月(지서월)>로 보면 그 뜻이 <西方의 달(月)을 밝게(炤) 알다(知)>가 되므로 ‘소지왕’은 <서방의 달을 밝게 아는 왕>으로 해석된다. ‘月’(달 월)은 신라 진흥왕의 태자 ‘銅輪’(동륜; 구리바퀴)과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銅’의 파자 ‘쇠’(金)와 ‘동’(同)의 합성음 ‘쇵’(‘쇠 + 동 - 쇵’)이 ‘성’(聖)과 같기 때문이다. 또 “Ⅱ-1. ‘보름’의 어원”에서 제시한 발해 문왕의 시호 중에 ‘寶曆’(보력) 및 ‘聖’(성)과 도 상통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알 지’자 ‘炤知王’은 <서방출신의 聖>인 귀읍임금(聖의 파자 耳邑壬)을 밝히(炤) 아(知)는 왕(王) 즉 <예수를 밝히 아는 왕>으로 해석된다. 그 다음 ‘炤智’(소지)는 ‘炤’(소)가 <밝다>이며, ‘智’(지혜 지)는 파자 <知日>(지일)을 <知東日>(지동일)로 보면 그 뜻이 <東方의 해(日)를 밝게(炤) 알다(知)>가 되어 그 주인공이 왕이므로 <동방의 해를 밝게 아는 왕>으로 해석된다. ‘日’(날 일)은 신라 진흥왕의 차왕자이며 뒤의 眞智王(진지왕)의 이름 ‘金輪’(금륜; 쇠바퀴)과 같은 뜻으로 볼 수 있으며, 또 발해 문왕의 시호 중에 ‘金輪’(금륜) 및 ‘法’(법)과 상통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지혜 지’자 ‘炤智王’은 <동방출신의 法> 즉 <翟曇(적담; 부처의 이름)을 밝게 아는 왕>으로 해석되므로 이는 당시의 사상정책이 반영된 왕명표기가 아님이 밝혀진다. 그리하여 비처왕의 이칭 ‘소지왕’의 두 가지 표기 ‘炤知王’과 ‘炤智王’ 중에 필자는 ‘毘處王’(비처왕)의 뜻과 상합되는 왕명을 전자 즉 ‘알 지’자 ‘炤知王’으로 보는 바, 그 뜻은 <서쪽의 귀퉁이 고을 임금(聖 - 耳口壬 - 耳邑壬今;이읍임금 - 귀퉁이 고을 임금)을 밝게 아는 왕> 즉 <예수를 밝게 아는 왕>으로 해석된다. 그 실제적인 증거의 하나로 [Ⅱ-2. ‘대보름’의 유래] 중 왕을 죽이려던 분향수도승의 음모의 원인이 '사금갑'사건의 1년 전인 소지왕 9년(487년) ‘奈乙神宮’(나을신궁)을 설치한 일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하였던 것이 확실시 된다. 왜냐하면 ‘奈乙神宮’(나을신궁)의 ‘乙’(새 을)을 ‘샐’(새 + 을 - 샐)로 발음하여 ‘奈乙’(나을; 어찌 나, 새 을)을 <나샐>로 읽으면, 예수의 성장지 ‘나사렛’의 표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奈乙神宮’(나을신궁)을 <나샐신궁>으로 읽으면 ‘奈乙神宮’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교회>임이 밝혀지며, 이를 통해서 신라 왕실의 기독교신앙의 실상 중 한 부분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그리하여 필자는 ‘사금갑’사건을 ‘나을신궁’의 설치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되어 신라왕실 내전에서 분향을 담당하던 수도승이 궁주(왕비)와 공모하여 비처왕(炤知王)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가 거문고 갑 속에서 화살을 맞고 처형된 사건으로 본다.
2. ‘天泉亭’(천천정)의 의미
‘天泉亭’(천천정)은 <하늘 샘 정자>의 뜻이므로 기도처 즉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추정되며, 소지왕이 ‘천천정’에 행차한 일도 신라의 毘處策(비처책) 추진의 하나로 본다. 그리고 이 샘에서 흘러내린 물이 ‘피촌’(避村 ; 세상의 잡된 일을 피하는 곳)의 연못을 이루고, 이 연못 부근에 사는 노인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天泉亭’(천천정)은 <하나님이 임한 곳>이 되며, ‘못’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모여서 사는 곳, 또는 그 부근의 마을>에 해당될 것이므로 ‘노인’은 당시 이 <마을의 원로> 즉 <“야소화왕”을 믿는 원로신자>로 추정된다.
3. ‘까마귀’의 뜻과 ‘쥐’의 해석
‘까마귀’(烏)는 <神子(신자) 즉 天子(천자)를 상징하는 새>로 본다. 왜냐하면 ‘까마귀’를 <가마귀-가마기-감아기>로 보면 ‘감아기’의 ‘감’은 일본어로 ‘神’(신)을 ‘かみ’(가미)라 하며, 그 뜻이 <위 높은 곳, 天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감’을 고대어의 <가미 - 감>에서 이루어진 말로 보며, ‘감아기’가 ‘까마귀’로 변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까마귀’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불길한 새>로 인지되고 있으므로 까마귀를 <감아기>로 보는 것이 지나친 편견으로 생각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까마귀’를 생태적 측면으로 보면 孝鳥(효조; 효도하는 새) 즉 反哺鳥(반포조)로 알려져 있으므로 대보름의 유래에 등장하는 ‘까마귀’를 당시에는 <감아기> 즉 <天子(천자)를 상징하는 좋은 새>로 인지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쥐’(鼠)는 <사도 도마를 상징하는 동물>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필자가 영주시 순흥읍내리벽화고분의 벽화와 영주시 평은 왕류동 ‘분처바위’ 및 안동 학가산 바위유적에서 쥐그림조각을 발견함으로써 ‘분처바위’의 ‘分處’(분처)가 <處容(처용)의 分身(분신)>의 약칭으로 예수의 사도의 한 사람인 도마(한자명문 “刀馬・明” 및 히브리어문자 명문 “םת” 타-우, 멤-)를 상징하는 동물임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필자가 『삼국사기』 ‘열전’의 '설총전' 화왕계의 ‘白頭翁’(백두옹)을 사도 도마의 다른 명칭으로 파악하였으며, ‘쥐’(鼠)를 백두옹 상징 동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또 『삼국유사』‘사금갑’ 조에 “쥐가 사람처럼 말했다.”는 것과 또『동경잡기』의 ‘달도가’에 ‘까마귀’와 ‘쥐’가 신물(神物)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세기 말에 해당되는 『삼국유사』‘사금갑’조의 ‘쥐’(鼠)는 1세기 후반부터 耶蘇花王引導者(야소화왕인도자)인 사도 도마를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되었음이 5세기 초 ‘名全行’(명전행)이 작성한 ‘분처바위’에서 필자가 판독한 명문 “耶蘇花王引導者像 刀馬・明手目”(야소화왕인도자상 도마・명수목) 및 “分處像”(분처상)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4. ‘烏忌日’(오기일) 및 ‘上亥日’(상해일)․‘上子日’(상자일)․‘上午日’(사오일)의 행사
“오기일(烏忌日)에 찰밥으로 제사하는 일”은 왕의 생명을 구해준 까마귀의 은혜에 감사하는 행사이며, 또 까마귀를 천자(예수) 상징 새로 볼 때에 烏忌日(오기일)이 대보름날 즉 ‘望’(바랄 망; 파자 亡月壬;망월임)인 것은 <죽었다가(亡) 부활 승천하여 달(月)이 된 임금(壬今) 예수에 대한 감사의 날>로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찰밥의 ‘찰’을 필자가 ‘보름’의 어원에서 다룬바 있는 <次婁>(차루) 즉 <차루-찰>과 같이 음가 ‘찰’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천자 예수를 상징하는 곡식이름의 하나>로 본다. 다음에 上亥日(상해일), 上子日(상자일), 上午日(상오일)의 행사를 다루고자 한다. ‘上亥日’(상해일)은 <첫 돼지날>의 뜻인데, ‘사금갑’조에서 두 돼지가 싸워서 궁궐 안에서의 모해 음모를 행동으로 알려 주었기 때문에 이 일로 인하여 다시 있을지도 모를 흉조를 조심한 것으로 추측된다. ‘上子日’(상자일)은 <첫 쥐날>의 뜻으로 역시 ‘사금갑’조에서 ‘쥐’가 궁중에서 있었던 음모를 알고 그 해결책을 말해주었기 때문에 조심한 것으로 추측된다. ‘上午日’(상오일)은 <첫 말날>의 뜻으로 ‘사금갑’조에서 ‘말’은 기사가 왕의 생명을 구하게 된 일을 확인하는 데에 쓰인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이 날을 ‘상해일’ 및 ‘상자일’과 함께 조심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하여 필자는 ‘오기일’(까마귀 제삿날) 및 ‘상자일’(첫 쥐날)과 연관된 것으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사금갑’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한다.
5. ‘打芻戱’(타추희)의 의미
『동국세시기』에 대보름과 연관된 풍속 중에 ‘打芻戱’(타추희)가 있다. 이 놀이는 “남녀의 나이가 나후직성(제웅직성)에 들면 芻靈(추령)을 만드는데,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머리 속에 동전을 집어넣고 14일 밤 초저녁에 길에다 버려 액을 막는다. 그런 뒤에 동네아이들이 와서 ‘제웅’의 머리 부분을 파헤쳐 돈만 꺼내고 길에 버리고 발로 밟는다.”고 한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芻靈(추령)을 방언으로 처용(處容)이라고 하는 것인데, 처용은『삼국유사』에는 ‘處容郞’(처용랑) 또는 ‘處容’(처용)으로 기록되었으며, 9세기 말엽 신라 헌강왕 때에 동해 용왕의 아들로 나오지만, 필자가 발견한 바위유적의 하나인 5세기 초 작성된 영주시 평은 왕류동 ‘分處바위’(<分身處容바위>의 약어)에서 판독된 명문 ‘處容’(처용)을 필자는 <예수>로 해석하였으며, 9세기 말 신라에 들어온 ‘처용랑’을 필자는 <예수 전도자>로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處容歌’(처용가)에서 ‘처용랑’이 관용을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추희’에서의 芻靈(추령)은 <짚으로 만든 인형>이므로 필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보며, 또 ‘打芻戱’(타추희)는 짚으로 만든 인형을 아이들로 하여금 때리고 짓밟게 하여 재앙을 면하게 하려는 이기적인 풍속이므로 이 놀이는 <예수가 빌라도의 뜰과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한 일을 재연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 놀이를 통하여 <예수의 고난과 희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또 芻靈(추령)의 ‘芻’(꼴, 짐승먹이 추)를 예수와 연관시키면, 신약성서 누가복음 2장7절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두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 이러라” 즉 아기 예수가 탄생할 때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베들레헴 마굿간 말구유에 누인 일을 연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芻靈(추령)이 단순하게 <짚으로 만든 인형>만을 뜻하지 않고, 芻邑靈(추읍령)의 뜻인 鄒靈(추령) 즉 <예수의 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신라 味鄒王(미추왕; 재위 262-284년)과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다른 왕명 鄒牟王(추모왕; 재위 기원전 37-19년) 등이 모두 유대 나라와 연관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신라 미추왕과 고구려 시조 추모왕의 이름에 ‘鄒’(추; 파자 芻邑)자가 포함되었기 때문인데, 이를 통하여 신라의 미추왕은 <예수를 맛본 왕> 즉 <예수 신자>로 해석된다. 그 다음 고구려의 鄒牟王(추모왕)은 그 뿌리를 유대나라의 일족(12지파 자손)으로 추정함에 신라에서 행해진 ‘타추희’가 방증자료로 사용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논문의 성격상 그 내용은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6. 팥죽의 유래
『동국세시기』에 “정월 보름 전에 붉은 팥으로 죽을 쑤어서 먹는다.”고 하였으며, 이 풍속은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마을 풍속에 정월 보름날 문에 제사를 지내는데 먼저 버들가지를 문에 꽂은 뒤 팥죽을 숟갈로 떠서 끼얹고 제사를 지낸다. 지금 풍속에 팥죽을 먹는 것이 여기에 연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졸고 ‘동지 팥죽의 유래와 한국고대기독교 관련내용’에서 이 풍속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것으로 보았으며, 특히 ‘붉은 빛 팥죽’은 <예수의 보혈>로, ‘새알심’은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의 머리모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1942년 불국사 마당에서 출토되어 현재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팥깍지형 소조물>에 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여인의 얼굴모습이 <팥알모양>이므로 이 婆女(파녀; 팥네)를 <성모 마리아>로 보며, 이 여인의 품에 안긴 아기를 <아기 예수>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팥깍지형 소조물>의 아기의 머리가 <콩알모양>으로 보이므로 필자는 찹쌀가루로 빚어 만들어 팥죽에 넣는 <새알심의 모양>을 <아기 예수의 머리모양>으로 본다.
Ⅴ. 맺음말
필자는 ‘보름’의 어원을 <寶婁望>(보루망-보룸-보름)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하였고, ‘대보름’의 유래를 『삼국유사』‘사금갑’조의 기록을 통하여 신라 초부터 행해져 내려온 고대기독교 행사의 일면임을 밝혔다. ‘대보름’에 얽힌 비밀을 이 행사 시작시기의 왕명 ‘毘處’(비처)를 <처용을 비호하다>로 <예수를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한 왕>임을 밝혔다. 그리고 ‘비처왕’의 다른 표기 중 ‘알 지‘자 ‘炤知王’(소지왕)은 『삼국사기』‘신라본기’ ‘소지왕본기’ 및 『삼국유사』‘왕력’ 기록으로 그 뜻은 <知月(지월) - 西月(서월)을 밝게(炤) 아는(知) 왕>으로 해석하였다. 그 다음 ‘지혜 지’자 ‘炤智王’(소지왕)은 『삼국유사』‘사금갑’ 기록으로 그 뜻은 <知日(지일) - 東日(동일)을 밝게(炤) 아는(知) 왕>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두 ‘지’자 즉 ‘知’와 ‘智’의 개념이 西月(서월)과 東日(동일)을 知(지)함과 같이 그 뜻이 서로 다르며, 사상적으로 ‘知’(알 지)는 서방에서 성립된 기독교를 뜻하여 ‘處’(처)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었음을 밝혔으며, ‘알 지’자 ‘炤知’(소지)가 ‘毘處’(비처)와 같은 개념에 해당됨을 밝혔다. 그리고 ‘炤智’(소지)의 ‘智’(지혜 지)자는 동방에서 성립된 불교로 해석하여 사상적으로 ‘知’(알 지)자와 상이함을 밝혔으며, ‘炤智’(소지)는 당시 왕명에 반영하는 사상의 표기방식에 위배되었음을 밝혔다. 亭子(정자)의 명칭 ‘天泉亭’(천천정)을 <하늘 샘 정자; 기도처>로 보았으며, 소지왕의 '천천정' 행차도 비처책의 하나로 보았다. ‘까마귀’(烏)를 <가마귀- 가마기 - 감아기(神子 즉 天子의 뜻)>를 상징하는 孝鳥(효조)로 보았고, ‘쥐’(鼠)를 화왕계의 白頭翁(백두옹) 및 ‘분처바위’ 명문 ‘刀馬’(도마) 및 ‘םת’(히브리어문자 ‘타-우’, ‘멤-’) 즉 신약성서의 ‘사도 도마’를 상징함을 밝혔으며, 특수한 날 즉 ‘烏忌日’(오기일), ‘上亥日’(상해일), ‘上子日’(상자일), ‘上午日’(상오일)등의 행사를 통하여 ‘까마귀’, ‘돼지’, ‘쥐’, ‘말’ 등 ‘사금갑’사건과의 관련성을 밝혔다. 그 중에서 ‘烏忌日’(오기일; 까마귀의 제삿날)의 ‘까마귀’와 ‘上子日’(상자일; 첫 쥐의 날)의 ‘쥐’와 관련된 내용으로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사금갑’사건에서 연유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打芻戱’(타추희)는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고난을 재현하는 놀이>로 보았으며, 관련내용으로 ‘芻’자를 통해서 ‘鄒’(추)의 파자 <芻邑>의 개념 및 신라 왕명 ‘味鄒王’의 뜻을 <예수를 맛본 왕> 즉 <예수 신자>로 해석하였고, 고구려 시조 ‘鄒牟王’의 뿌리를 유대나라 12지파 자손의 일파로 추정하여 그 내용을 밝힐 수 있는 근거로 보았다. 팥죽의 유래 및 풍속을 통하여 신라 때 예수와 연관된 기독교 신앙의 일면을 살펴보았다. 한국 고대사에는 너무 많은 역사적 사실이 망각되었으며, 또 기록이 있을지라도 그 기록내용의 해석방법 등 문제로 인하여 진실을 잘 못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오늘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진 사실들을 발굴하는 과정에 마치 광부가 광맥을 찾는 일처럼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지만, 유적과 문헌과 전설 등에서 묻힌 역사적 사실을 찾으면 광부가 금을 캐어낸 기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1993년 작성한 내용을 2010년 일부 수정함)
참고문헌
일연 삼국유사 1967 광문출판사 홍석모 동국세시기(한국명저전집) 1972 대양서적 김부식 삼국사기 1966 선진문화사 박성원 일한사전 1966 휘문출판사 김주병 성경전서 1981 대한성서공회 유우식 고대기독교와 관련사의 고찰 1989 할렐루야 유우식 동지 팥죽의 유래와 한국고대기독교 관련내용 |